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군 특수전전단/역사 (문단 편집) === UDU가 UDT의 정예집단인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60년대후반udu.jpg|width=100%]]}}} || ||과거 수료생을 비롯하여 퇴교생, 단기교육과정 이수자들을 해군 정보부대(현재 UDU로 불림)로 보냈다. 김신조1.21사건 이후 퇴교생과 단기교육과정 이수자들을 대거 보내어 1968년 즈음의 UDU엔 수료생보다 퇴교생과 단기교육과정 이수자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사진은 해군 정보부대원들이 UDT 해마 상징의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이다.|| 1971년 UDU자체교육대가 창설되기전의 UDU는 진해 UDT에서 교육받은 UDT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60년대 후반 무렵, 인원이 부족하자 수료생을 비롯하여 퇴교생과 따로 단기과정을 모집하여 양성한 단기 비정규 UDT교육이수자들도 UDU로 보내기 시작했다. 해군 최다 북파공작 수행자인 UDT8기 김영춘 UDU경북지회장에 따르면 퇴교생이나 단기 비정규 UDT교육이수자들은 임무수행에 참여시키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당시 UDU멤버를 열거 할 때 UDT정규과정 수료자를 제외한 인원들은 UDU로 거론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UDU로 생각하지 않는듯 하다. 오히려 취사담당 2명은 거론했다.) [[https://youtu.be/mupcPqyiZ5Q?si=bP14MaYYvGCT0_KN|회고영상 링크]] 또 1968년 UDT14기 수료생은 본인이 인천(UDU)으로 올라갔더니 퇴교생과 단기 UDT교육이수자들이 UDT수료생보다 더 많았고 심지어 수영도 능숙하게 못하는데 어디가서 14기라고 하고 다녀서 기분이 좋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https://youtu.be/IaTBTLjCmWU?si|회고영상 링크]] 따라서 북파공작이 수행되던 시기이자 UDU의 구성이 전원 UDT들로 구성되어 있던 시절 당시 임무수행하던 진짜 UDU들은 UDT의 정예라고 평가 할 여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러한 사전전제가 없다면 1960년대 후반 무렵부터는 UDU가 UDT수료생 뿐만 아니라 UDT퇴교생, 단기 비정규 UDT교육이수자들도 있었기 때문에 UDU가 UDT의 정예집단이라 말 할 수 없다. 북파공작 당시 해군 첩보부대에 배속된 공작원(UDU)들은 UDT에서 교육받은 군인들이였고 해군 첩보부대가 71년부터 UDT교관단을 끌어가 자체교육 시켜 내려져 온 UDU라 일컬어지는 부대와 UDT는 태생(교육과정)이 다른부대이다. 해군 첩보부대에 배속된 UDT출신 공작원들을 같은 선배로 두었을 뿐이다. 항간에는 UDU가 UDT의 정예집단이라는 낭설이 있다. 그 낭설의 근거에 대해 확인을 확인해보자. 1. “UDU(Underwater Demolition '''Unit''')이고 '''Unit'''은 한 개인을 의미하기 때문에 Team으로 움직이는 UDT(Underwater Demolition '''Team''')보다 정예이다”라는 주장. 이야 말로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다. 모든 특수부대는 '''기본적'''으로 팀으로 움직이며 그렇게 편제되어 있으며 UDU 또한 예외 없다. 또한 Unit에 대해 사전을 찾아보면 Unit의 군사적 의미는 [[https://dict.naver.com/search.nhn?dicQuery=unit&query=unit&target=dic&ie=utf8&query_utf=&isOnlyViewEE=|특정 임무를 위한 '''부대''']]라 되어 있다.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게임에서 처럼 어떤 한 개인이나 병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UDU를 제외하고 부대명에 Unit를 사용하는 부대는 SSU(해난구조대)와 SOU(경찰특공대) 등이 있다. 2. “UDT에서 UDU로 인사발령이 나기 때문에 UDU가 UDT보다 정예집단이다” 라는 주장. '''이는 사실이 아니다.''' 1971년 부터 UDU라 공식적으로 명명된 지금의 정보사령부 해상특임부대에 UDT대원이 선발되어 인사발령 나지 않는다. UDU대원들이 자체적으로 양성되기 전, UDT대원들 일부가(대략 3분의 1) 정보사령부 해상특임부대의 전신 해군첩보부대 해상정찰대에 인사발령 났던 것이 사실이다. 그게 뭐가 달라? 라고 의문을 품을 수 있는데 이는 엄연히 다르다. 정보사령부 해상특임부대(UDU)의 전신 해상정찰대는 자체적인 특수요원 양성프로그램이 없었다. 그래서 해군은 UDT에서 막 수료한 인원이나[* 처음 모집을 UDT로 하였으나 수료 후 UDT 생활 없이 바로 UDU로 간 인원들도 있고 모집을 UDU로 되어 UDT 교육을 받고 UDU로 간 인원들도 있다.] UDT에서 생활하고 있는 인원중 일부(약 1/3) 해상정찰대로 배속 시켰고[* 해상정찰대에서 전역, 부상, 전사, 자신의 원에 의하여 결원이 생기면 수중파괴대로 인원보충요청을하였고 수중파괴대에서는 장교나 선임하사관이 부대원중에 골라 보내거나 공개지원자를 보내기도 하였다. 해상정찰대의 지휘관 또한 수중파괴대 출신이 많았기에 직접 눈여겨보았던 UDT대원을 고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 배속된 인원들이 해군 첩보부대(NRU)와 구별되고자 스스로 UDU라 칭했다.[* 해군은 군 특성상 육군과 달리 첩보 및 파괴공작을 수행 할 병력이 UDT를 제외하고 딱히 없다.] 17기부터는 교육과정이 분리되면서 인사교류 또한 현격하게 줄었다. 분리된 교육과정을 받고 UDT, UDU에서 생활 중 UDU로 가거나 UDT로 간 사례가 있으나 극히 적다. 70년대 들어서 남북화해 분위기로 인하여 상호간 무장공작원 파견이 급격히 줄었고 1972년 7.4남북 공동성명으로 인하여 북파공작이 중단되었다. '''즉, 북파공작이 수행되던 시절의 해상정찰대(UDU) 작전요원은 해군 첩보부대라는 북파공작 주무부대에 배속된 UDT교육을 받은 인원들이었던 것이다.''' 만약 당시 해군 첩보부대에 자체적인 특수요원 양성프로그램이 존재 했고 자체양성된 해상정찰대 대원들과 선발과정[* 델타의 OTC나 데브그루의 그린팀과정 같은 선발과정]을 통해 선발된 UDT 인원들이 같이 해상정찰대 생활을 했다거나 혹은 현재 예전처럼 UDT 한 곳에서 UDT, UDU같이 교육 시키고 20명이 수료하면 1등에서 10등 까지는 정보사 해상특임부대(UDU) 11등에서 20등까지는 UDT로 배속되는 구조라면 부대 계보상 해상정찰대의 명맥을 잇는 지금의 UDU(정보사령부 해상특임부대)가 UDT보다 정예집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해상정찰대 작전요원들은 해군 첩보부대(NRU)소속의 UDT 교육을 받은 인원들[* 모집이 UDT였으나 UDU로 가게 되었건, 처음부터 모집도 UDU였고 UDT 교육 후 UDU로 가게 되었건 모두 UDT 교육대에서 교육을 받았다.]이었을 뿐이고 교육성적이 좋거나 수료를 한 인원들만 해상정찰대에 간 것이 아니다.''' NRU에 배속되어 NRU 소속이지만 NRU와 다른 정체성과 자부심이 있었던 그들이 NRU와 UDT를 합쳐 UDU라 스스로 명명한 것이라는 해상정찰대에 근무했던 UDT(해상정찰대 UDU)의 진술이 있다. '''당시 해상정찰대로 간 인원들과 안가고 본대에 남은 인원들간 엘리트 시시비비 문제는 어디까지나 당시 UDT 교육을 이수한 자들간의 내부 사정이지 당시 존재하지도 않았던, 1971년부터 UDT 교관들을 통해 자체 양성된 지금의 정보사 해상특임부대(UDU)가 UDT의 정예집단이라는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해상정찰대에 한 번 배속이 되었다고 해서 영영 해상정찰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UDT 근무 중 해상정찰대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인원, 수료 후 바로 해상정찰대로 갔다가 다시 UDT로 돌아온 인원들이 존재한다.] 또한 UDT에서 해상정찰대로 갔던 인원들이 UDT 교육 성적이 좋았던 인원들이였거나 UDT내에서 엘리트로 인정받는 인원들만 간 것이 아니라는 당시 복무자들의 진술 또한 존재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